유식삼십송

제26송 자량위

문선광 2006. 12. 2. 20:12

제26송 자량위


1) 송문


내지미기식(乃至未起識) 구주유식성(求住唯識性) 어이취수면(於二取隨眠) 유미능복멸(猶未能伏滅)


2) 풀이


유식성(唯識性)을 구하여 그기에 안주하려 해도 아직 순결택식(順決擇識)을 일으키지 않았을 경우에는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이취(二取) 수면종자를 복멸(伏滅)할 수 없다.


3) 해설


이미 유식의 실성을 알고 유식을 닦아 유식의 진의성(眞義性)에 안주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이취수면(二取隨眠)을 극복해야 한다. 만약 이취수면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식의 실성에 안주하고자 한다면 잠을 자면서 꿈을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유식의 실성에 안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불법(佛法)은 이론 보다 수행증과를 중시하고 있다. 아무리 이론에 밝아도 실행하지 않으면 공담(空談)으로 흐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 유식학파들은 분석을 정밀하게 하지만 최후에는 반드시 수행계위가 있어서 성불에 이르도록 인도하므로서 신(信), 해(解) 행(行) 증(證)에 어긋나지 않도록 한다.


성유식론에 의하면 대승의 두 가지 종성(種性)을 구족한 사람은 유식5위 수행을 통하여 유식실성을 깨달아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본성주종성(本性住種性)은 유정의 제8식 중에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불종자를 의부(依附)하는 것으로 이 불종자는 무루법의 정인(正因)으로서 최후로 발전하여 성불의 지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다음 습소성종성(習所成種性)은 불법을 청문(聽聞)함으로서 얻어들은 지혜가 제8식 중에 훈습되어 들어가 일종의 습기가 되는 것으로 본성주종성과 똑 같은 교능(校能)을 갖추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대승 종성(種性)을 구족한 사람은 모두 유식오위를 수행하는 가운데 점차 유식성으로 깨달아 들어가서 마침내 성불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송의 요지는 유식의 실성에 안주하고자 하는 발심수행자가 극복해야 할 바를 가르치는 송구로서 오위의 수행계차 중에서 자량위에 속한다. 먼길을 떠나려면 풍족한 자재와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과 같이 불도를 닦아 구경열반에 이르고자 한다면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송은 불과를 이루고자 하는 자량(資糧)이 곧 분별심과 번뇌종자를 끊음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 송이다.


개개인의 범부가 5위수행을 거쳐서 불과를 얻으려면 3대아승지겁을 경과해야 된다고 하는데, 자량위는 10주(住), 10행(行), 10회향(回向)의 30위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자량위를 닦는데에만 1아승지겁이 경과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화엄경과 비유하자면 10주 앞에 10신(信)을 더해야 하기 때문에 40위의 수행계위가 되는 것이다.


제1구 내지미기식(乃至未起識)의 미기식(未起識)이란 분별이집(分別二執)을 끊어서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뜻으로 이미 유식의 실성을 알고 분별망식을 복단(伏斷)하는 계위(階位)가 되었다는 뜻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수행을 할 수 있는 준비 즉 자량(資糧)을 갖추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제2구 구주유식성(求住唯識性)이란 유식의 실성에 안주하기를 희구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유식의 실성이란 원성실성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변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성실성에 안주하고자 하여 분별이집의 식을 일으키지 않는 것 자체가 수행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취수면이 능히 복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드시 극복해야한다는 것을 계시한 송이다.


제3구 어이취수면(於二取隨眠)의 이취수면이란 아(我)와 법(法) 곧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를 뜻하는 것이다. 수면이란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번뇌가 늘 중생을 따라다니므로 수(隨)라하고 그 작용이 아득하여 마치 잠자는 상태와 비슷하므로 면(眠)이라 하며, 이를 번뇌종자라고도 하는데, 온갖 번뇌의 종자는 항상 중생을 따라다니며, 제8식 중에 엎드려 잠자고(眠伏) 있으므로 수면이라 한다.


제4구 유미능복멸(猶未能伏滅)의 복(伏)은 복단의 뜻이고 멸(滅)은 단멸의 뜻이다. 수행자가 분별이집은 이미 복단하였으나 아직도 번뇌종자를 단멸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이 수행위는 유식수행 5위 중에서 첫 번째인 자량위를 말하는 것이다.


자량(資糧)이란 자재(資財)와 양식(糧食)을 말하는 것으로 먼 길을 떠나려면 반드시 풍족한 자재와 양식을 준비해야 하듯이 불도를 닦아 구경열반(究竟涅槃)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송(頌)은 불과를 이루고자 하는 자량(資糧)이 분별심과 번뇌종자를 끊음에 있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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