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영험있는 관음, 나한기도처
1) 금오산 향일암
전남 여천시 돌산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향일암(向日庵)은 마치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름에 걸맞게 바위 표면이 마치 거북의 등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금오산(金鰲山)이 바다와 맞닿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절의 왼쪽으로 보리암과 감응도가 보이고 정면으로 세존도, 오른쪽으로 미타도와 관음동굴이 펼쳐지는 관음기도의 영험 있는 도량이다.
향일암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8년(서기 659)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圓通庵)이라 하였고 고려 제4대 광종 9년(서기 958) 윤필(允弼) 대사가 산의 이름을 따서 금오암(金鰲庵)이라 고쳤으며, 조선 숙종 41년(서기 1713)에 인묵(仁默)대사가 금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모든 자료는 명확한 근거가 없고 다만 원효와 의상 두 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한 것은 사실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의 암자는 지난 1849년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책륙암(策六庵)이라 하였는데, 이는 육근(六根)의 옳지 못함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수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근래에 와서 경봉(鏡峰, 서기 1885-1969년)스님이 영구암(靈龜庵)이라고도 하였는데, 이곳의 지형과 관련된 뜻도 있으나 '거북이가 위급할 때 머리와 꼬리를 감추는 것과 같이 수행자는 항상 자기 몸을 낮추고 조심해서 수행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10여 년 사이의 계속된 불사에 의해서 새로운 전각과 요사가 들어서면서 어엿한 가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향일암(向日庵)은 신기하게도 소금기가 전혀 올라오지 않으며, 절 이름에 어울리게 아침 해돋이는 마치 부처님이 방광을 하면서 나투시는 듯 하고 보름달이 비치는 밤바다는 황금 연못으로 변하여 마치 연화장(蓮華藏)세계를 연상케 하는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2) 월출산 무위사
전남 강진 월출산 무위사(無爲寺)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39년(서기 617)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관음사라 하였고, 제49대 헌강왕 원년(서기 875) 도선국사가 중창하여 갈옥사라 하였으며, 고려 정종 원년(서기 945) 선각국사 형미(泂微)가 다시 중창하여 모옥사(茅屋寺)로 바꾸고 다시 조선 명종 10년(서기 1554년)에 태감선사가 중창하여 지금의 절 이름인 무위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위사 사적기에 나타나 있는 이상의 연대는 그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원효가 절을 창건하였다는 서기 617년은 원효대사가 출생한 해이고 선각국사 형미(泂微)는 고려 태조 왕건이 개국하기 이전에 이미 입적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무위사는 10세기 이전에 창건되어 도선국사가 머물러 있던 시기에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1934년에 국보로 지정된 극락보전은 조선 세종 12년에 건립하고 성종 7년에 벽화를 봉안하였는데, [어느 날 노스님 한 분이 찾아와서 자기가 벽화를 그리겠다고 하면서 백일 동안 법당 문을 열어 보지 못하게 했는데, 99일째 되는 날 한 스님이 창살 사이로 법당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한 마리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벽화의 관세음보살상은 눈동자가 없는 미완성의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3) 성덕산 관음사
전남 곡성의 성덕산 관음사는 백제 제10대 분서왕 3년(서기 300년)에 성덕(聖德)이라는 처녀보살이 낙안포에서 금동관세음보살상을 모셔다 세운 절이라고 한다. 조선 영조 5년(서기 1729년)에 작성된 관음사 사적기에 의하면 원통전(圓通殿)에 모신 관세음보살상은 중국 진(晉) 나라의 황후 원홍장(元洪莊)이 원불로 조성하여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돌배에 실어 고향으로 보낸 것이라고 한다.
설화에 의하면 충청도 대흥현에 사는 원랑(元郞)이라는 사람은 소년시절에 실수로 눈을 잃었으나 행실이 정직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으면서 착하고 부지런한 아내까지 얻어 행복하게 살았으나 아내가 딸을 출산하던 중 산고로 세상을 떠난 후 어린 딸 홍장을 젖동냥으로 키우면서 어렵게 살았는데, 그에게 어느 날 흥법사 화주승인 성공스님이 찾아와서 시주를 간청하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원랑은 그 스님에게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재산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어린 딸이 하나 있을 뿐인데 불사에 도움이 된다면 데리고 가서 좋은 도리를 생각해 보시오'라고 하였더니 스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어린 딸을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딸을 보내야 하는 마음은 안타까웠으나 이미 약속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비장한 심정으로 스님을 따라나선 홍장(洪莊)과 그 일행이 바닷가 언덕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배 두 척이 나타나더니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홍장 앞에 엎드려 고하기를 '저희는 진(晉) 나라 사람으로 최근 왕후가 돌아가시자 대왕께서 무척 상심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왕후 되실 분을 백제에서 모셔오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고 찾아왔다가 이곳에서 왕후가 되실 분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사연을 들은 홍장은 '내 한 몸 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아버님을 위해서 선근(善根)을 심어드리고자 하니 이 배에 실은 모든 보물을 스님에게 바치도록 하여 주시오'라고 부탁을 하고 진 나라로 가서 왕후가 되었으며, 그 곳에서 금동관음보살상을 원불로 조성하여 돌배에 실어 자기가 떠났던 고향으로 보냈는데, 한 달만에 낙안포에 도착하였다.
바닷가에서 돌배에 실려있는 금동관음보살상(金銅觀音菩薩像)을 발견한 성덕(聖德)이라는 처녀가 그 관음보살상을 모실 곳을 찾기 위하여 보살상을 등에 업고 성덕산을 넘어 가다가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부득이 그 자리에 모셨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관음사(觀音寺)라고 한다.
어머니를 잃고 동냥젖을 얻어먹으면서 자란 딸이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하여 부처님께 시주로 바쳐져서 중국으로 팔려가서 왕비가 되었으며, 아버지는 부처님의 공덕으로 눈을 떠서 아흔 다섯 살까지 살았다는 '소설 심청전'과 이 설화의 줄거리가 너무나 흡사하여 곡성군에서는 심청전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면서 절 입구에 '심청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4) 설악산 오세암
강원도 인제 설악산 만경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오세암(五歲庵)은 신라 선덕여왕 13년(서기 644년)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장이 절을 창건하면서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이라 하여 관음암이라 하였으며, 조선 명종 3년(서기 1547년)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허응당 보우스님이 이곳에서 기도수행 중 문정왕후에 의해서 선종판사로 발탁되면서 암자를 크게 중건하였다.
그 후 인조 21년(서기 1643년)에 설정(雪淨)스님이 중수한 이후 암자 이름을 오세암(五歲庵)으로 고치고 5세 동자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면서 더욱 영험 있는 도량으로 알려졌는데, 그 설화 내용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형의 아들을 데려다 키우고 있던 스님이 겨울이 막 시작되기 전인 시월 어느 날 월동준비를 위해서 양양 장터로 가면서 이틀 동안 혼자 있을 어린 조카가 먹을 수 있는 밥을 지어 놓았다.
스님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어린 조카에게 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면서 '너는 이 밥을 먹으면서 저 어머니를 보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 너를 보살펴 주실 것이다.'라고 당부한 다음 길을 떠나 장터에서 일을 본 후 신흥사에 들려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밤새도록 엄청나게 많은 눈이 쌓여 있고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어서 암자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스님은 오직 한 가닥 기적을 바라면서 기도를 드리는 사이에 어느덧 해가 바뀌고 겨울이 지나 길이 뚫리자마자 암자로 달려갔는데, 그 동안 죽은 줄로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에는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내가 감돌았다. 스님이 아이를 안고 그 까닭을 물어보니 관세음보살상을 가리키면서 '저 어머니가 매일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며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관음봉으로부터 흰옷을 입은 여인이 내려와서 동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가 되어 날아갔으며, 스님은 다섯 살의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어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절을 고쳐짓고 오세암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설화로 다섯 살 때 사서삼경을 읽어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은 설잠(雪岑)이 이곳에서 출가하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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