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상

1. 공사상의 역사

문선광 2005. 9. 4. 21:04

공(空) 사상

 

공(空)이란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서 반야경(般若經)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데, 이 말은 자성(自性, svabhava)과 실체(實體, dravya) 또는 본성(本性, prakrti)이나 자아(自我, atman) 등과 같은 인간들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인연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생겨난 연기적(緣起的)인 존재에 불과함으로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공(空)의 원어 범어 Sunya를 순야(舜若)로 음역하여 '부풀어오름' 또는 '속이 텅 빈' '공허한 것' 등으로 해석하며, '무엇인가 없는 상태' 또는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반야경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불교에서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공(空)의 의미를 사상적인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을 공사상(空思想)이라 하고 공사상을 주장하는 논조를 공론(空論, Sunyavada)이라고 한다.


1. 공사상의 역사

 

초기불전 가운데 최고(最古)의 경전인 숫다니파타(Suttani-pata, 經集)에서 '항상 생각을 집중하여 자아(自我, atman)에 집착하는 견해를 타파하여 세간(世間)을 공(空)으로 관찰하라 그러면 죽음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세간을 공으로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왕(王)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하여 부처님 당시부터 자아에 대한 집착을 타파할 수 있는 것은 세간이 공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대승불교 운동은 먼저 반야경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반야경의 중심사상은 공사상으로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고정화된 것을 거부하면서 집착을 떠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천명하고 있다. 반야경은 기원전 2세기경에 남인도에서 시작하여 기원 후 2세기까지 서인도와 북인도로 옮겨가면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반야경의 공 사상은 공(空)의 언어적 반복에 의한 독주와 설득력이 부족한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은 바로 제2의 석가라고 하는 용수(龍樹, Nagarjuna)로서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中論)의 공사상은 바로 오늘날의 대승불교 사상의 근간이 되고 있는데, 그는 중론에서 공사상의 역사적인 위상은 바로 '부처님의 교설(敎說)에 의한 것'이며, '연기법(緣起法)에 의한 것'임을 밝힘으로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인 체계를 수립하였다.


가. 용수와 공사상
대승불교 사상사에서 용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가 활약한 연대는 대략 서기 150-250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으며, 남인도 비달마의 한 돈 많은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문의 연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바라문의 성전(聖典)인 4베다(beda)를 비롯한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포함한 당시의 모든 학술을 골고루 연구하고 남김 없이 암기하였다고 한다.


청년시절에 이미 모든 학문에 정통해 버린 그는 친구 3명과 함께 '정욕의 극치를 누려보자'고 하면서 은신술(隱身術)을 써서 왕궁으로 잠입하여 무려 백여 일 동안이나 궁궐 안에서 궁녀들을 희롱하면서 정욕을 탐닉하다가 결국 발각되어 그의 친구 3명은 모두 붙잡혀서 살해되었고 혼자만 겨우 탈출하여 '욕망은 괴로움의 근본'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깨달은 후에 불문(佛門)에 입문한 인물이다.


그는 고향의 어느 산 위에 있는 탑사(塔寺)를 찾아가서 그 곳에서 출가수계하고 90여일 동안 수행하면서 스승이 가지고 있던 경(經)·율(律)·론(論) 삼장을 모조리 독파한 후 또 다른 경전을 구하기 위해서 동북인도로 가다가 히말라야 지방에서 한 나이 많은 스님으로부터 대승경전을 얻어 탐독하였으며, 외도(外道)들과 만난 논쟁의 자리에서는 그들을 모조리 논파하였다.


그는 또 다른 경전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용궁에 이르러 대룡보살(大龍菩薩)로부터 일곱 개의 칠보함에 숨겨져 있던 심오한 비전인 '무량(無量)의 묘법(妙法)'을 받고 그것을 읽으면서 선정(禪定)에 들어가서 심법(心法)을 깨달았으며, 만년에는 남인도로 가서 그 나라의 국왕을 불교로 개종시키면서 많은 논서를 저술하여 대승불교를 크게 선양시킨 사람이다.


그는 중론(中論) 500게(偈)를 지어 인도에서 대승불교를 크게 일으켰는데, 그가 지은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연기(緣起)하고 있는 것 그 모든 것을 우리는 공성(空性)이라고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가명(假名)이며, 그것은 중도(中道) 그 자체이다.' 라고 하여 반야경이 설하고 있는 공(空) 역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힘으로서 공사상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는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의 상호관계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일 뿐 고정 불변하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공(空)인 것이며, 자성(自性)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잘못된 망상으로 그것은 희론(Prapanca, 戱論)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중론(中論)의 중심 내용을 '연기(緣起)=무자성(無自性)=공(空)'으로 연결 지울 수 있다고 하였다.


용수는 중론 제24장에서 '여러 부처님은 이제(二諦)에 의거해서 법을 설하시는데, 첫째는 세속제(世俗諦)이고, 둘째는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이 이제의 구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 깊고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한다. 세속제에 의하지 않으면 제일의제는 설해지지 않고 제일의제에 의하지 않으면 열반은 얻을 수 없다'고 설하고 있다.


용수가 이제설(二諦說)에서 말하는 세속제(世俗諦)란 연기(緣起)와 공(空)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하는 세간의 언어습관을 말하는 것으로 만약 연기와 공을 부정하게 되면 세간의 삶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의제(第一義諦) 또는 승의제(勝義諦)는 연기와 공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얻어지는 최고의 진실 된 진리로서 바로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고 하고 있다.


나. 용수 이후의 공사상
'어떤 것이 그 자체의 존재를 가지지 않는 모습이 곧 공(空)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이라는 것을 터득하는 자는 모든 것을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을 터득하지 못하는 자는 일체의 모든 것을 획득되지 못한다.'고 하는 용수(龍樹)의 공사상을 중심이론으로 하는 사상을 중관사상(中觀思想)이라 하고 중관사상의 흐름을 이어받은 논사(論師)들을 중관파(中觀派)라고 한다.


초기의 중관파로는 용수 당시의 제자로서 아리야데바와 라훌라바드라 등이 있으며, 이들 중에 아리야데바(Aryadeva, 聖提婆, 서기 170-270년)는 사백론과 백론, 백자론 등의 저술을 남기고 있는데, 백론(百論)은 용수의 중론, 십이문론(十二門論)과 더불어 중국 삼론종의 기본 전적(典籍)으로 중요시되고 있으나 용수의 사상을 선양하기 위해서 외도사상을 너무 심하게 비판한 까닭에 논적들로부터 암살 당했다고 한다.


초기 중관파에 이어 중기의 중관파 학자는 붓다팔리타(Budhapalita, 佛護)와 바바비베카(Bhavavi-veca, 淸弁) 찬드라키르티(Candrakirti, 月稱) 등이 있고 후기 중관파에는 이제분별론을 지은 즈냐나가르바(Jnanagabha, 智藏)와 날란다 승원의 대학장으로서 후기 대승불교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샨타라크시타(Santaraksita, 寂護)와 티베트 불교의 전래와 교단확립에 큰 역할을 한 카말라실라와 아티샤(Atisa) 등이 있다.


중국의 중관사상은 구마라집(鳩摩羅什, 서기 344-413)이 번역한 용수의 중론(中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 및 아리야데바(Aryadeva, 聖提婆)의 백론(百論) 등 삼론(三論)을 기반으로 길장(吉藏)이 집대성하여 삼론종(三論宗, 法性宗)으로 발전하였으나 현장(玄장, 서기 602~664년)에 의해서 유식계통의 법상종(法相宗)이 들어오면서 삼론종은 급속히 쇠퇴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의 관법사(貫法師)와 인사(印師), 혜관(惠灌) 등이 이를 연구하였으며, 특히 혜관은 일본에 삼론종을 전하여 일본 삼론종의 초조로까지 추앙을 받았으며, 신라에서는 원효가 이제장(二諦章)과 삼론종요(三論宗要), 중관론종요(中觀論宗要) 등 중관사상 계통의 저술을 많이 지었다고 하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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