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성제
제(諦)란 팔리어로 Satya 즉 '진리' 또는 '진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사성제(四聖諦)란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가는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로서 먼저 '괴로움을 알고(苦)'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을 찾아서(集)' '그 괴로움을 없애고(滅)' '열반에 이르는 길(道)을 가르쳐 주는 진리'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고(苦)의 원인을 규명하고 고(苦)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의 고(苦)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의사가 환자의 병을 치료할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였다. 먼저 의사가
병을 진단하듯이 인생의 실상(實相)인 고(苦)를 말하고 병의 원인을 찾아내듯이 고(苦)의 원인을 규명하여 병을 치료한 후에 좋아진 건강 상태를
말하듯이 고(苦)가 소멸된 상태인 열반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병의 치료 방법을 말하는 것처럼 열반에 이르는 길(道)을 제시하고 있다.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이후 녹야원에서 5명의 제자들에게 최초로 설법한 초전법륜(初轉法輪)으로부터 시작하여
쿠시나가라(Kusinagara) 사라쌍수 아래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드실 때까지 45년 동안 가장 많이 설한 가르침이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고(苦)에서의 해탈을 위해서 만들어진 가장 구체적이면서 가장 논리적이고 가장 실천적인 가르침이다.
가. 고성제
고성제(苦聖諦)란 환자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신이
어떠한 병에 걸려 있는가를 진단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인생이 고(苦)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苦)의 어원인 범어의 듀카(dhkha)는 '잘 나가지 않는다' '바라는 데로 되지 않는다' 또는 '하기 어렵다' 등으로 풀이하고 번뇌 또는
불안으로 해석한다.
부처님께서 '나는 단지 고(苦)와 고(苦)의 소멸만을 가르칠 뿐'이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불교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살아간다는
것은 고(苦)이고 어떻게 하면 이 고(苦)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설명해 놓은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고(苦)의 종류에 대하여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생로병사의 네 가지 기본적인 고통(四苦) 외에도 여덟 가지의 고통(八苦), 또는 세 가지의 고통(三苦)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 집성제
집(集)은 범어 samudaya를 번역한 말로서 '불러모으다'라는
의미를 가 지고 있으며, '집기(集起)'로 해석한다. 따라서 집성제(集聖諦)란 고(苦)를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근본이 되는 원인은 지나친 욕망 때문으로 오관의 작용에 의한 관능적인 욕망은 물론이고 재산과 권력에
대한 애착이나 사상과 신앙, 명예 등에 대한 집착도 모두 욕망이다.
인간은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욕망의 집착으로 인해서 끝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욕망은 모든 고통(苦)의
뿌리'로서 인생의 모든 불행과 전쟁 등의 괴로움도 전부 지나친 욕망의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마치 주인이 노예를 부리듯이 인간을 마음대로
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인생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인생을 지배하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욕망은 구체적으로 욕애(慾愛)와 유애(有愛), 무유애(無有愛) 등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욕애는 오욕 즉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리키는 것이고, 유애는 존재에 대한 욕망으로 오래도록 살고 싶다든지 다음 생에는 천상에 태어나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등의 욕망을 말하고, 무유애는 무존재(無存在)로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서 사후에 허무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욕망 등이다.
다. 멸성제
멸(滅, nirodha)이란 열반(涅槃)을 뜻하며, 열반은
니르바나(nirvana)를 음역한 말이다. 열반이란 소멸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고(苦)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생사의
괴로움(苦)은 무명에서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무명을 없앰으로서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열반은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이며, 마지막
이상으로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바로 이 열반을 얻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반은 현재의 생(生)에서 성취할 수 있으나 그것은 완전한 열반은 아니고 다만 괴로움의 원인인 욕망을 다스림으로서 욕망 때문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괴로움은 벗어날 수 있으나 병이나 부상을 당했을 때 받는 육체적인 괴로움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살아있을 때 성취하는 열반을
생존의 근원이 남아 있는 열반이라고 해서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 하고 생존의 근원이 소멸된 사(死) 후의 완전한 열반을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 한다.
부처님은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유여열반을 이루시고 쿠쉬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무여열반에 드셨는데, 이와 같이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열반을 반열반(般涅槃) 또는 대반열반(大般涅槃)이라고도 하며, 이러한 열반의 세계는 중생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고 언어나 문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오직 체험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세계라고 한다.
라. 도성제(팔정도)
도성제(道聖諦)는 정확하게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의 도(道)는 열반에 이르는 길이며, 고(苦)와 락(樂)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도의 길은
지나치게 쾌락주의적인 호화로운 생활도 아니고 극단적인 고행주의 생활도 아닌 몸과 마음이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상태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소나(sona)경에서는 중도를 거문고 줄에 비유하여 거문고 줄이 지나치게 팽팽하거나 느슨해도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그 줄이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도 역시 중도의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러한 중도에 대하여 가장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팔정도(八正道)이다.
1) 정견
정견(正見, samyak-drsti)이란 '바른 견해(見解)'
또는 '바르게 본다'는 뜻으로 연기와 사성제에 관한 불교의 올바른 지혜로서 고(苦)의 발생과 소멸,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길을 편견 없이 바르게
보고 바르게 이해하라는 뜻이다. 정견을 제일 먼저 수행토록 하는 것은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무아(無我)인 것을 바르게 보아야 다음의
칠지(七支)가 바르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정사
정사(正思, samyak-samkalpa) 또는 정사유(正思惟)는
결의를 나타내는 말로 바르게 사유하고 바르게 마음을 먹는다는 뜻이다. 생각할 바와 생각하지 않아야 할 바를 잘 분간하여 탐욕(貪愛)과
성냄(瞋에)과 어리석은 마음(癡暗)을 버리고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마음과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세 가지의 선(善)한 의업(意業)을 짓도록 하라는
것이다.
3) 정어
정어(正語, samyak-vac)는 '바른 말'을 사용하여 네
가지의 선(善)한 구업(口業)을 지으라는 것이다. 거짓말(妄語)을 성실한 말로, 아첨하는 말(綺語)을 정직한 말로, 이간시키는 말(兩舌)을
화해시키는 말로, 욕설하는 말(惡口)을 부드러운 말로, 말을 바르게 하여 구업을 다스리며, 서로 화합하고 유익한 말을 사용하여 뜻을 이루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정업
정업(正業, samyak-karma-anta)이란 몸으로 짓는 세 가지 행위 즉 세 가지의 업(業)을
말한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목숨을 구해줄 것이며,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물건은 함부로 훔치지 말 것이며,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보시로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청정한 생활을 하면서 좋은 업을 지어야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정명
정명(正命, samyak-ajiva)이란 '바르게 생활하는 것'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의식주만
구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불법(佛法)에 의지하여 바른 생활을 함으로서 혜명(慧明)을 구하고 음식은 자기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도만
취하도록 하며, 자신의 이양(利養)을 위해서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의 바르지 못한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르지 못한 다섯 가지의 일이란 첫째,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고 이양을 구하는 일, 둘째 자기의 공덕을 말하여 가장 우월하다고 뽐내어
이양을 구하는 일, 셋째 점술(占術) 등으로 사람의 길흉(吉凶)을 말하여 이양을 구하는 일, 넷째 호언과 장담 등으로 위세를 가장하여 이양을
구하는 일, 다섯째 이(利)가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좇아 다니면서 이양을 구하는 일 등이다.
6) 정정진
정정진(正精進, samyak-vyayama)이란 '바르게 노력하는 것'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이룩하려는 노력과 올바른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용기와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는 큰 뜻을 가지고 모든
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다음의 네 가지를 정근하면서 마음을 닦으라는 것이다.
네 가지의 바른 정진이란 첫째 아직까지 생기지 아니한 잘못된 생활태도는 앞으로도 생기지 못하도록 하고, 둘째 이미 생긴 잘못된
생활태도와 악(惡)한 일은 하루빨리 없애도록 노력할 것이며, 셋째 아직도 생기지 않은 선(善)한 일은 하루 빨리 생기도록 노력하고, 넷째 이미
생긴 선한 일은 더욱 빨리 자라도록 하라는 것이다.
7) 정념
정념(正念, samyak-smrti)이란 '바르게 기억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바에 따라서 잊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바른 의식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잊지 않는 일이며, 바른 생각과 상응하여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등이 외면화(外面化)된 것을 다시 안으로 돌려서 그에 대한 기본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
8) 정정
정정(正定)이란 '몸과 마음을 바르게 안정시키고 한 곳에 집중한다'는 뜻으로 삼매라고도 하고
정(定)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참선이기 때문에 '선정(禪定)'이라고도 하는데, 바른 선정은 바른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방편이 될 뿐만
아니라 얻은 지혜를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수행의 방법이다.
일체의 모든 존재가 곧 괴로움이며, 무상하고 무아라는 근본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고 바르게 닦아 나갈 때 바른 지혜가 피어나고
불도(佛道)의 크고 바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즉 정견(正見)으로 진리를 바르게 응시하고 바른 생활을 영위(正念)하면서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정정(正定)을 닦을 때 마음의 해탈을 얻게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