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삼법인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서로 어우러져야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 연기설은 중생들의 삶에 대한 일체의 고뇌를 해탈하는 방법으로 삼법인(三法印, dhanna-mudra)을 설하고 있는데, 법인(法印)이란 '법의 특성' 또는 '법의 도장'이라는 말로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른바 외도(外道)들의 사상과 불교를 구별하는 가장 기본적 사상이다.
법구경(法句經)을 비롯한 초기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삼법인을 설할 때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세 가지를 설하고 있으나 후대에 와서 일체개고를 빼고 대신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어 삼법인으로 설하거나 이들 네 가지
모두를 포함한 개념으로 사법인(四法印)을 설하는 경우도 있다.
가. 제행무상
제행(諸行, sarva-samskara)이란 '일체의 만들어진
모든 것' 또는 '모든 존재'를 뜻하고 무상(無常, anitya)이란 '항상(恒常)함이 없다' 또는 '변화하고 변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일체의 모든 현상은 한 순간의 정지도 없이 생기고(生) 머물다가(住)
변화하고(異) 없어지는(滅) 생주이멸(生住異滅) 또는 생멸변화(生滅變化)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의 요소가 일정한 조건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모여 있는
집합체(集合體)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와 조건이 변하거나 사라지게 되면 그 존재 역시 반드시 변하거나 사라지게 되는
것으로 그것이 물질적인 존재이거나 정신적인 존재를 불문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많은 경전에서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고(苦)가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데, 무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악한 사람도 개과천선하여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여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시간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무상한 존재이기 때문에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나. 일체개고
우리가 느끼는 감수작용에는 괴로움의 느낌인 고수(苦受)와 즐거움의
느낌인 낙수(樂受), 그리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는 불고불락(不苦不樂)의 사수(捨受)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느낌은 물론 즐거움의 느낌이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는 느낌까지도 모두 괴로움이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존재는 우리가 바라는 데로
영원히 머물러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의 종류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기본적인 고통인 네 가지 고통 외에도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져야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와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고자 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구득불고(求得不苦), 오온(五蘊)의
집착으로 인해서 생기는 오음성고(五陰盛苦, 五取蘊苦)의 네 가지를 합해서 모두 여덟 가지의 고통으로 설하는 경우도 있다.(分別聖諦經)
이 밖에도 추위와 배고픔과 부상을 당했을 때 느끼는 인간의 감각적인 괴로움인 '고고(苦苦)'와 자기가 애착을 가지고 있던 대상이
사라져 버리거나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사람이 그것을 잃어버리고 아끼던 물건이 없어졌을 때에 느끼는 '괴고(壞苦)' 및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무상(無常)함에 대한 괴로움인 '행고(行苦)' 등 삼고(三苦)를 설하기도 한다.
다. 제법무아
제법(諸法, sarva-dharma)이란 모든 존재를 의미하며,
무아(無我)는 '아(我)가 없다' 또는 '실체적 아(我)가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란 생멸변화(生滅變化)를 벗어난
'영원불멸의 존재인 실체 또는 본체'를 말하는 것으로 무아이론은 초기불교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전 불교사상사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불교를 다른 종교 및 사상과 구별짓는 가장 독특한 교리이다.
법구경에 '고(苦)는 욕망 때문에 생기고 욕망은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제거되지 않으면
가지를 잘라도 뿌리에서 다시 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이 고(苦)도 계속해서 생긴다'고 하고 있는데, 아(我)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적인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비실체적 요소인 사대와 오온이 화합해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가아(假我)'일 뿐이다.
라. 열반적정
열반(涅槃)이란 범어 니르바나(Nirvana)를 음역한 말로서
멸(滅), 적(寂), 안락(安樂) 등으로 번역하며, 소멸(消滅)을 의미하고 모든 번뇌의 불꽃을 꺼서 없앤 무고안은(無苦安隱)한
상태이며,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초기경전에서 '모든 탐욕의 사라짐, 분노의 사라짐, 어리석음의 사라짐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고 설하고 있으며, 적정(寂靜, santi)은 열반과 같은 말이다.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마음인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이 모두 소멸되면 더 이상 괴로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열반의
이러한 상태를 비유하여 '마치 마른 나뭇단을 많이 넣고 달군 큰 가마(釜) 속에서 불타고 있던 사람이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시원한 장소로
도망쳐 나왔을 때 느끼는 최상의 안락(安樂)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