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처님의 제자
부처님의 제자 중에는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과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을 비롯해서 주변 여러 나라의 왕과 왕비 등 찰제리(刹帝利) 출신은 물론 사성계급 중에서 최상위 계급인 바라문(Brahmana) 출신과 기원정사를 지어 기증한 수닷다(須達多) 장자, 상인과 서민 출신의 바이샤, 노예와 육체노동자들인 수드라(Sudra) 출신자들까지 출가와 재가의 남녀 제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항상 부처님 곁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수행하던 출가비구의 숫자만 천 2백 명이 넘었고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된 제자로서 제1결집에
참가한 제자도 5백 명이나 되었으며, 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열 명의 제자를 특히 십대제자라고 하는데, 이들과
부처님과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 중에서 특히 경전이나 설화로 전해지는 눈물겹고 정겨운 인간적인 사연과 그들의 출가동기를 살펴본다.
가. 십대제자
1) 가섭존자
부처님의 제일 큰 제자 대가섭(Mahakasyapa)은 출가 전
왕사성 부근의 마하바라촌에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을 고집하는 아들을 보고 대가 끊어질 것을 염려한 부모가 결혼을
재촉하였더니 효심이 깊었던 그는 여러 모로 고심을 하다가 아름다운 금빛의 여인상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보여드리면서 '만약 이와 똑 같은 여인이
나타나면 결혼을 하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하였다.
하루 빨리 손자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아들의 결혼이 시급한 그의 부모님은 그 조각상을 들고 백방으로 찾아다닌 결과 우연히 조각상과 꼭
같은 여인을 찾아내었고 둘은 할 수 없이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약속을 하고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순결을 지키면서
동남동녀(童男童女)로 지내다가 양친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 출가를 결심하고 서로의 머리를 자른 다음 부처님에게 귀의하였다.
대가섭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가장 큰 상수 제자로서 다른 제자들보다 별다르고 돈독한 부처님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부처님과 가섭존자 사이에 오고 간 사랑에 얽힌 이야기들 중에서 특히 정겹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는 두 분이 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는 이야기와 말 한 마디 주고받지 않고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전한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일화가 있다.
먼저 두 분이 옷을 바꾸어 입었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가섭존자는 부처님과 함께 탁발을 마치고 정사로 돌아가던 중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가섭은 부처님의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음을 보고 자기가 입고 있던 가사를 벗어 부처님이 앉으시도록 자리를 마련하여
드렸는데, 부처님은 가섭이 깔아주는 그 가사를 손으로 만져 보시고 '천이 참 부드럽고 좋구나' 하면서 가섭을 바라보았다.
말을 듣는 순간 가섭은 부처님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있었던 자신을 무척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서 자기의 가사를 벗어
부처님께 드리고 자기는 부처님이 입고 계시던 낡은 누더기를 입고 한 평생 그대로 살았으며, 하루에 한끼씩의 식사를 하면서 나무 밑이나 묘지
등에서 평생 동안 자리에 눕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잤기 때문에 가섭을 일러 두타행제일(頭陀行第一)의 제자라고 한다.
다음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일화란 부처님과 가섭 사이에 있었던 일로서 말 한 마디 없이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은 세 가지의
일화를 말하는데, 첫째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라는 자리 나눔의 일화이고, 두 번째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전한
염화미소(拈華微笑) 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이며, 셋째는 부처님 열반 후에 있었던 곽시쌍부(槨示雙趺)의 일화이다.
먼저 '다자탑전분반좌'란 이야기로서 가섭은 항상 누더기 옷을 걸치고 무덤주변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몸에서 항상 고약한 냄새가 나서
다른 수행자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부처님은 어느 날 설법 도중에 가섭을 불러 '나는 그대의 스승이고 그대는 나의
제자이니 여기 함께 앉자'고 하면서 부처님이 앉았던 자리의 절반을 내어 주시면서 가섭에 대한 남다른 신임을 보여주었다.
다음 이야기는 '이심전심의 일화'로서 부처님께서 어느 날 영취산에 모습을 나타내시었는데, 대중들은 평소와 같은 설법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부처님은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모든 대중들이 그 뜻을 몰라 부처님의 얼굴만 처다 보고 있을 때
가섭존자는 얼른 뜻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고 있었는데, 이것을 '염화미소(拈華微笑)' 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라고 한다.
부처님은 가섭의 미소를 보고 설법을 시작하면서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 및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미묘법문(微妙法門)은 교리 밖에 따로 전하는 것으로 이것을 가섭에게 부촉(咐囑)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염화미소 또는 염화시중의 미소로 인해서
선문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는 법의 계승이 이어지고 있으며, 수행자들에게 공안이 되고 있다.
부처님이 한 송이의 꽃을 들고 대중들에게 보인 것은 말이 아닌 꽃을 듦으로서 직접 '부처님의 마음(大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부처님이 꽃을 들었을 때 가섭존자가 미소를 지은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가섭의 마음이 일체가 되었음을 보여준 것으로 이것이 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미소'인 것이다.
마지막 일화는 부처님의 열반 때 있었던 '곽시쌍부(槨示雙趺)의 일화'이다. 부처님은 가섭존자가 멀리 다른 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을 때 열반에 드셨는데, 가장 사랑하는 제자를 만나보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을 못내 잊지 못하였으나 계속 기다릴 수도 없는 형편이라서 장례
원칙에 따라 시신을 관속에 안치하고 다비(茶毘)를 위해서 관을 불 위에 올려놓았으나 불이 자꾸 꺼지면서 관은 꿈적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멀리서 부처님의 열반소식을 듣고 제자 5백 명과 함께 달려온 가섭이 유해 곁으로 다가가서 관을 붙들고 통곡을 하였는데, 갑자기
관에서 구멍이 뚫리면서 제자를 마중이라도 하듯이 두 다리가 관 밖으로 나왔다. 가섭이 관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두 손으로 다리를 받쳐들었더니
조용히 관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다비를 진행하였다.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할 때 두 손을 받쳐드는 것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법화경 수기품(授記品)에 의하면 부처님은 십대제자 중 가섭에게 가장 먼저 미래세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내리면서 '나의 큰 제자
가섭은 오는 세상에 삼 백 만 억 부처님에게 봉사하고 공양하며, 부처님을 존경하고 존중하며, 기리고 찬탄하여 최후의 몸에서 부처가 될 것이니 그
이름은 광명여래(光明如來)이고 나라 이름은 광덕(光德)이요 겁(劫)의 이름은 대장엄(大莊嚴)이라 하리라'고 하시었다.
가섭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이후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 하나라도 사라지기 전에 하루 빨리 결집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해
하안거를 마치고 난 후 상좌비구 5백 명을 칠엽굴(七葉窟)에 모아 놓고 아난(阿難)이 경(經)을 외우고 우바리(優婆離)가 율(律)을 암송하면
다른 제자들은 이를 확인하여 각자의 머리 속에 다시 정리하였는데, 이것을 제일결집(第一結集) 또는 상좌결집(上座結集)이라고 한다.
2) 아난존자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존자의 이름은 아난다(Ananda)이고
중국어로 번역하여 아난(阿難)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환희(歡喜) 또는 경희(慶喜)이다. 아난은 그의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실제로 단정한 용모와 강직한 성품, 그리고 명석한 두뇌와 판단력을 갖춘 빼어난 인물로서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본의 아닌 일로 오해를 받았으며, 그로 인한 숱한 일화도 남기고 있다.
아난이 부처님의 시봉(侍奉)을 들게된 것은 부처님이 55세가 되던 해로서 성도 하시고 20년이 지난 이후이다. 이전까지는 장로들이
차례로 시봉의 역할을 하였으나 모두 나이가 많아서 아난에게 맡기기로 하였는데, 시봉자리가 무척 어려우면서도 자칫하면 특권의식에 젖어 교만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아난은 부처님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여 허락을 받은 후에 시봉이 되었다.
아난이 부처님에게 제시한 조건은 첫째 부처님을 위해서 만들어진 의복은 절대로 물려받지 않을 것이며, 둘째 부처님을 위해서 만든
음식은 절대로 받아먹지 않을 것이며, 셋째 개인적인 일 때문에 절대로 부처님을 만나 뵙지 않는다는 등의 세 가지 조건이다. 조그마한 권력만
가지면 온갖 이권에 개입하려고 하는 공직자 사회에서 윗사람을 모시고 있는 공직자들이 한 번쯤 음미해 볼 만한 대목이다.
아난은 시자로서 항상 부처님의 뜻을 먼저 알아차리고 사전에 모든 준비를 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과거의 다른 제자들은 내 말을 다
들은 후에 비로소 그 뜻을 알아차렸으나 아난은 내 눈빛만 보고도 모든 것을 알아 차린다'고 하시면서 칭찬을 하였다. 그러나 다문제일의 아난존자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부처님 입멸 후 경전 결집과정에서의 역할 즉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집하기 위해서 5백 명의 장로들을 칠엽굴로 소집하였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알고
있던 아난존자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칠엽굴로 달려간 아난을 맞이한 가섭존자의 태도는 단호하고 냉정하였다. '아직도
아라한이 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이 곳에 출입할 수 없다'고 하면서 문도 열어 주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가섭의 냉대를 받고 발길을 돌린 아난은 그 길로 조용한 곳을 찾아 수행정진에 몰입하여 새벽이 오기 전에 깨달음을
얻었으며, 하룻밤 사이에 아라한이 된 아난이 환한 얼굴로 장로들이 모여 있는 곳을 다시 찾아갔을 때 가섭을 비롯한 모든 장로들은 아난존자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리다가 모두 일어서서 반갑게 맞이하였고, 대작불사 결집작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난이 대중들 앞에서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 하나 하나를 기억해 내었는데, 그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글에 '아난이 법좌(法座)에 올라 부처님의 말씀을 막힘 없이 암송하는데, 참석한 5백 대중들의 기억과 하나도 틀림이 없어 부처님이 다시
살아오신 것인지 혹은 다른 세계의 부처님이 오신 것인지 아난이 성불한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당시의 분위기까지 재현하였다'고 한다.
이후 아난은 나이 120세에 입적할 때까지 한 순간의 휴식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으로 전파하였는데, 그가 입적했을 때
사리(舍利) 때문에 다툼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갠지스강 한 가운데에서 다비를 하고 사리를 수습하여 2등분으로 나누어 강의 북쪽과 남쪽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었으며, 남은 유골은 별도로 수습해서 왕사성에 있는 죽림정사(竹林精舍) 옆에 안치했다고 한다.
사위성에 있는 기원정사 안에는 아난존자가 아침저녁으로 물을 길어서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는 '아난존자의 우물'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의하면 마투라 지역에도 '아난존자의 탑'이 있었다고 하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쿠시나가라에
있는 열반당(涅槃堂) 뒤에도 '아난존자의 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3) 사리불
많은 대승경전에 사리자(舍利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지혜제일(智慧第一)의 제자 사리불(舍利弗, Sariputra)은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태어났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브라만교의 4Veda를 줄줄
외울 정도로 영특하고 기예도 능하였다고 하며, 친구 목건련(目건連, Maudgalayana)과 함께 육사외도(六邪外道) 중의 한 사람인
산자야(Sanjaya)의 제자였으나 스승의 학설인 회의론(懷疑論)에는 항상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어느 날 왕사성 거리에서 탁발하는 수행자를 보고 그의 소탈하고도 청정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사라불이 '나는 당신의 청정한 태도에
진정으로 매혹되었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이며,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하고 물어 보았을 때 그 수행자가 '나의 스승은
석가모니부처님이며, 가르침에 대해서는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깊이는 모르겠으나 요지만 말씀드리겠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제법종연기(諸法從緣起) 여래설시인(如來說是因), 피법인연진(彼法因緣盡) 시대사문설(是大沙門說). 즉 '여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의 도리에 따라서 생기고 그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설하시었다'고 대답하였는데, 그 연기법송(緣起法頌)을 들려준 탁발
수행자는 초전법륜 때 부처님에게 귀의한 다섯 비구 중의 한 사람인 아슈와지트(阿濕毘, Asvajit) 비구로서 최초의 깨달음을 얻은
제자이다.
한편 아슈와지트로부터 연기법의 게송을 들은 사리불은 순간 진리의 눈을 뜨게 되었고 스승 산자야 밑에서 함께 수행하던 친구
목건련(目건連)에게 연락하여 그들이 데리고 있던 동료 250명과 함께 부처님에게 귀의하였으며, 이후 사리불(舍利弗)은 지혜제일(智慧第一)의
제자가 되고 목건련은 신통제일(神通第一)의 부처님 제자가 되었는데, 스승 산자야는 그 충격으로 인해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법화경 비유품에 사리불이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리불이 오는 세상에 부처 이루어 그 이름은
'화광여래(和光如來)'로서 한량없는 중생 제도하리니 수 없는 부처님 공양하면서 보살의 행과 열 가지 공덕 갖추고 위없는 도(道)를
증득(證得)하리라'고 하시었다. 사리불은 교단이 시련을 당하거나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언제든지 뛰어난 지혜로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께서 말년에 과로 때문에 설법을 하지 못할 때 사리불이 대신하여 설법을 하면 부처님이 이를 추인 하였으며, 그러한 여러
연유로 인해서 부처님은 사리불을 부를 때 '나의 장자(長子)'라고 하시었다. 그 후 목건련이 외도들에게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사리불이
부처님을 찾아가서 '목건련과 함께 입멸을 맞고 싶다'는 청을 하였으며, 부처님은 그의 인연이 다했음을 알고 청을 기꺼이 허락하시었다.
허락을 받은 사리불은 고향 날란다(Nalanda)로 가서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고 열반에 들었으며, 유골은 탑으로 세워졌는데,
200년이 지난 뒤 아쇼카대왕이 불교유적을 순례할 때 기원정사에 있는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면서 10만금을 희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인도불교가
한창 흥성하던 시기에 만 명의 비구가 불교학을 연구한 날란다 승원 유적지에는 사리불과 목건련이 수행한 토굴이 남아 있다.
4) 목건련
목건련(Maudgalyayana)은 목련존자(目連尊者)라고도
하며, 왕사성 부근에 있는 콜리타(Kolita)라는 마을 명문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무척 총명하여 신통제일이라는
말 그대로 불가사의하고 걸림이 없으며,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신통'을 얻어 초기 교단의 유지와 전도활동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사적인 일에는 절대로 신통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여섯 가지 신통이란 수행의 결과 얻어지는 신통력으로 첫째 천안통(天眼通)은 공간적으로 멀고 가까운 것은 물론 보통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일체 세간의 모습과 중생들의 고락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을 말하고, 둘째 천이통(天耳通)이란 보통 인간의 귀로는 듣지 못하는 일체
세간의 좋고 나쁜 말과 멀고 가까운 소리는 물론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들의 소리까지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셋째 타심통(他心通)이란 다른 사람 또는 사람 아닌 것들의 마음을 아는 신통력으로 마음을 읽고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을
말하고, 넷째 숙명통(宿命通)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보는 신통력을 말하며, 다섯째 신족통(神足通)은 멀고 가까운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마지막 누진통(漏盡通)은 연기의 인과관계를 모두 알아서 인간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코살라국 비두다바왕이 부처님의 고향 카필라국을 침범하여 석가족을 멸망시키려고 할 때 목건련이 부처님을 찾아가서 신통력으로 성 둘레에
철로 제방을 쌓아 적의 침범을 막겠다고 하자 부처님은 석가족의 멸망은 과거에 지은 업의 과보에 인한 것으로 이미 인연이 다하였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으로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만류해서 이를 중지하였는데, 석가족은 그 전쟁에서 패배하여 멸망하고 말았다.
목건련에게는 부처님의 도움으로 지옥에 있는 어머니를 천도시킨 '목련구모'라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는 생전에 남의
험담을 즐기다가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졌는데, 자신의 신통력으로 어머니를 구하려고 하였으나 어머니의 지은 업이 너무나 커서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구할 수 없어서 부득이 부처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모든 수행자가 함께 힘을 합쳐 어머니를 천도시킨 이야기이다.
우란분경(盂蘭忿經)에 의하면 기원정사에 있을 때 신통제일의 목건련이 여섯 가지 신통력을 얻은 다음 천상천하를 두루 살펴보았더니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지은 죄로 아귀(餓鬼)지옥에 태어나서 음식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여 피골이 상접하여 있음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음식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올렸으나 음식물이 입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뜨거운 불길로 변해버리는 것이었다.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목련존자는 부처님에게 어머님을 구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어머니의 죄는
너무 무거워서 혼자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고 시방의 모든 대덕 스님들의 법력을 빌어야 하는데,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을 기하여 온갖
음식과 과일을 공양하면 살아 있는 부모는 물론 7대 조상과 6종의 친척들까지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에서 쾌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말을 들은 목건련은 하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보름날을 맞이하여 수행을 마친 부처님의 모든 제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법회를 열어 그의 어머니를 천도시켰는데,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이날은 수행자를 공경하고 조상을 천도하는 효행의 날로 봉행하고 있으며, 이날을
우란분절(盂蘭忿節) 또는 백중(百衆)이라 하고 이날의 법회를 우란분회 또는 우분회, 정령제라고도 하고 있다.
얼마 후 목련존자는 왕사성에서 외도들에게 몰매를 맞아 위독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소식을 들은 사리불이 달려가서 '목건련이여
신통제일인 그대가 왜 저들의 박해를 물리치지 않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목련존자는 '지금 이 고통은 내가 전생에 부모를 박해하였던 과보의
결과'라고 하면서 그대로 받아드렸는데, 목건련은 전생에 아내에게 속아서 자기 부모를 숲 속에 버려 살해한 과보가 있다고 한다.
5) 수보리
해공제일의 수보리(Subhuti)존자는 기원정사를 세워 부처님에게
기증한 사위성의 대부호 수닷다(須達多, Sudatta) 장자의 조카이며, 금강경에서 공(空) 사상을 설하시는 부처님의 대화자로 등장하여 질문을
거듭하여 삼라만상의 실상을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과 무상(無相)의 도리를 확연히 깨닫고 있는 수보리는 공사상과 관련된 수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한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불심이 매우 깊었던 분으로 평소 '나는 덕망 있는 스님들에게는 반드시 정사를 지어 드릴 것'이라고 약속을
하고 다녔는데, 마침 수보리가 왕사성에 들어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꺼이 토굴 하나를 지어 수보리에게 기증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다른 나라와
전쟁을 치르느라고 토굴 위에 지붕 올리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비가 많이 내리는 인도에서 지붕 없는 집에 산다는 것은 무척 황당한 일이었으나 수보리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드리고 수행정진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수보리가 그 토굴에 머문 뒤로부터 왕사성 일대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농민들은 가뭄 때문에 큰
고생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토굴에 지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 빔비사라왕은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즉시 지붕을 올려주었다.
이때 수보리존자가 읊었다는 시(詩) 한 수가 장로게경(長老揭經)에 전하고 있는데 역시 해공제일의 수행자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의 토굴이 완성되니 소란한 주위가 고요하고 마음이 평화로우니 여기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라네 하늘이여 이제 비를 내려주오 나는 진리를 찾았거늘
이제는 비를 내려 주오' 지붕이 완성되고 수보리존자가 이 시를 읊은 직후부터 왕사성에는 흡족한 단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를 일러 피공제일(被供第一)이라고도 하는데, 누구보다 많은 공양을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공양을 받을 때 가장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그가 자랄 때는 성질이 포악해서 친구들은 물론 가족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으나
부처님을 만나 교화를 받은 후에는 무쟁도를 깨달아 무쟁제일(無諍第一), 해공제일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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