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부처님 생애

3. 설법과 교화

문선광 2005. 7. 16. 06:45

3. 설법과 교화

 

부처님은 위없는 큰 깨달음을 얻은 뒤 자신이 깨달은 것을 혼자 음미하면서 계속 깊은 법열(法悅)에 잠겨 있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은 연기법과 응용이론인 십이연기(十二緣起)를 포함해서 모두 열 다섯 가지로서 그 내용이 너무 심오(深奧)하고 어려웠던 까닭에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부처님은 혼자서 조용히 법열을 즐기다가 열반에 드시려고 한 것이다.


그 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바라문교의 최고 신(神)인 브라흐만(梵天)이 중생들의 소망을 대신하여 부처님을 찾아가서 '세존이시여 먼 옛날부터 무수한 생사고해에 머물면서 온몸을 버리어 보시하시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도(道)를 구하신 것은 오로지 중생을 위한 자비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세존께서는 비로소 위없는 도를 이루었는데 어찌하여 법을 설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또한 무수한 중생들이 오랜 세월동안 생사고해의 수렁에 빠져 무명과 암흑 속에서 뛰쳐나올 기약도 없이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생들 중에는 지나간 세상에서 선(善)한 벗을 가까이 하고 덕(德)의 바탕을 쌓은지라 부처님의 법을 듣고 받아 지닐 만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큰 자비심을 베풀어 미묘한 법의 바퀴를 굴려 주십시오' 하면서 세 차례에 걸쳐서 간곡하게 설법을 청하였다.


이렇게 범천이 세 차례에 걸쳐서 설법을 청하였다고 해서 '범천권청(梵天勸請) 또는 범천삼청이라고 하는데, 권청을 받은 부처님은 마침내 설법을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범천왕은 들어라 내 이제 감로(甘露)의 문을 열고자 하니 귀 있는 자는 기꺼이 와서 지극한 마음으로 나의 설법을 듣도록 하라'는 게송(偈頌)과 함께 드디어 설법의 길에 나섰다.


설법을 결심한 부처님은 먼저 수행자 시절에 만났던 두 사람의 선인(仙人)으로 한때 가르침을 받았던 알라라-까르마와 우드라카-라마푸트라를 생각하였으나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무척 애석해 하시면서 지난날 부왕의 명령을 받고 자기를 찾아 나왔다가 도리어 설득을 당해서 함께 수행하던 아약교진여(阿若교陳如) 등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이 성도 후에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지난날 고행수도를 포기한 부처님을 타락해서 수행자의 자격이 없다고 오해하고 곁을 떠났던 다섯 명의 수행자가 고행수도를 계속하는 바라나시(Varanasi) 북쪽의 사르나트에 있는 녹야원(鹿野苑, Magadava)을 찾아가기로 했는데, 이곳은 부처님이 성도 하신 붓다가야(Buddha Kaya)로부터 무려 600여리나 떨어져 있는 먼 곳이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조용히 일어나서 전타라 촌을 거쳐서 순타사리타 마을에서 걸식하는 아지비카교의 수행자 우파카와 마주쳤는데, 그는 부처님을 보고 '어지신 고타마여 피부가 매우 좋고 청정하며, 때묻음이 없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둥글고 매우 장엄하여 모든 뿌리가(根) 적정(寂靜)하나이다. 당신은 누구를 스승으로 삼았고 누구를 따라서 출가하였으며, 뜻으로 즐기시는 것은 누구의 법입니까' 하고 질문을 하였다.


부처님은 '내 이미 모든 세간을 항복 받고 갖가지 지혜를 빠짐없이 성취하여 모든 법에 붙들리지 않고 일체 사랑의 그물을 벗어났으며, 능히 남을 위해서 모든 법을 설하니 일체지(一切智)라 이름하고, 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하여 자재롭게 무상존(無上尊)을 이루고 일체 천상과 인간세계 가운데 오직 나만이 마군을 항복 받고 스승 없이 혼자 깨쳐서 세간에서는 나와 더불어 짝할 이가 없노라'고 무사독오(無師獨悟)를 설명하였다.


우파카 바라문은 다시 부처님에게 '장로 고타마께서는 이제 어디로 가실 것이며 거기 가서 무엇을 하고자 하시나이까' 하고 묻기에 부처님은 '나 이제 바라나시(Varanasi)로 가서 묘한 법의 바퀴를 굴려 어두운 중생들을 깨우치고자 감로의 북을 치고 문을 열 것'이라고 하였다. 우파카는 부처님의 비범한 모습에 호기심을 가졌으나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미쳐 알아보지 못하여 최초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부처님께서 처음 녹야원(鹿野苑)을 찾아갔을 때 수행자 시절의 부처님 곁을 떠나갔던 아약교진여 등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는 아는 체도 않기로 자기들끼리 약속 하였으나 좀더 가까이 다가가자 성도하신 얼굴에서 나타나는 형언할 수 없는 위엄과 자비스러운 힘 앞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모두 일어나서 '장로 고타마시여 어서 오십시오' 하고는 자리를 권하였다고 한다.


부처님은 '앞으로 나를 부를 때 여래라고 하라'는 당부와 함께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을 하였는데, 내용은 고(苦)와 낙(樂)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의 원리로 팔정도와 사성제, 삼법인, 십이연기 등으로 설법을 들은 다섯 명의 수행자는 부처님 최초의 제자가 되었고 이로서 불(佛)·법(法)·승(僧) 삼보의 교단이 이루어지고 불교의 구체적 출발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팔상성도의 일곱 번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이다.


그러나 다른 법화경 팔리어 원본에는 '부처님이 성도 하신 이후에 처음으로 다섯 명의 수행자를 찾아갔을 때 네 사람의 수행자는 탁발을 나가고 없었고 남아있던 한 사람의 수행자도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은 나는 깨달았느니라 일단 내 말을 들어 보라고 하면서 수 차례의 설득을 거듭한 끝에 겨우 팔정도만을 설했다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 네 사람이 돌아 왔을 때도 역시 바로 조복(調伏)한 것이 아니고 '들어 보아라' '못 듣겠소' '들어 보아라' '못 듣겠소'하는 실랑이를 하다가 설법한 내용은 '지나친 고행은 괴로움 때문에 수행에 장애가 되고 지나친 안락은 즐거움에 집착하게 해서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도(中道)'라는 것을 설하여 그들 다섯 명의 수행자를 최초의 제자로 받아드렸다'고 한다.


초전법륜지 녹야원에는 아쇼카대왕이 세운 석주와 쿱타시대(서기 320~650)에 세운 다메크탑(大法眼塔)이 상층부는 허물어졌으나 지금도 높이가 43m나 되고 기단의 직경이 36m에 이르는 원형의 우람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19세기 초 이 탑 속에서 5세기의 서체로 씌어진 법신게(法身偈)가 발견되었고 그 곳에 있는 고고학(考古學) 박물관에는 부처님 최초의 설법모습을 새겨놓은 초전법륜상(初轉法輪像)이 안치되어 있다.


아약교진여(阿若교陳如) 등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부처님 최초의 제자가 된 직후 바라나시(Varanasi)의 한 장자(長者)의 아들로서 인생을 비관하고 번민하던 야사(Yasa)라는 청년이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뒤에 출가하였고 뒤이어 그의 부모와 아내까지도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으며, 야사의 친구 4명과 또 다른 친구 50명도 설법을 듣고 모두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출가제자들인 비구(比丘, Bhiksu) 60명 외에 재가의 남자신도 (優婆塞, Upasaka)와 여자신도(優婆夷, Upasika)들까지 거느리게 된 부처님께서는 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전도(傳道)의 길을 떠나도록 권하였는데, 이것이 세상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할 것을 선언한 최초의 '전도선언(傳道宣言)'이다.


'비구들아 이제 전도를 위한 길을 떠나라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모든 사람들(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아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條理)와 표현을 잘 갖춘 법인 진리(眞理)를 설하여라 또 완전하고 흠(欠)이 없는 깨끗한 범행(梵行)을 설하여라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서 우루벨라(Uruvela)의 세나니가마(將軍村)로 갈 것이니라'고 하였다.


제자들을 전도의 길로 떠나 보낸 부처님은 나이란자 강변에서 화신(火神)을 섬기는 사화외도(事火外道) 출신의 가섭(迦葉, Kasyapa) 삼 형제를 제도하기 위해서 지난날의 수행장소였던 우루벨라로 되돌아갔다. 그 곳에는 바라문교도인 맏이 우루빈라(優樓頻螺)와 가야(伽倻), 나제(羅濟) 등 삼 형제가 천여 명의 제자를 거느리면서 마가다(Magadha)국의 빔비사라 왕으로부터 무척 존경을 받고 있던 사람들이다.


부처님은 삼 형제 중의 맏이인 우루빈라 가섭을 찾아가서 화당(火堂)에서 신통력을 겨루어 그를 굴복시킨 후에 그들 삼 형제와 그들을  따르고 있던 천여 명의 제자들도 함께 맞아드렸는데, 이로서 마가다국에서 가장 큰 교단 하나가 통째로 불교교단에 흡수되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그들 모두를 데리고 수도 왕사성(王舍城, Rajagraha)으로 들어갔다.


당시 마가다국의 빔비사라(Bimbisara)왕은 부처님보다 다섯 살 아래였으나 부처님이 수행자로 있을 때부터 깊은 친분을 가지면서 무척 존경을 하였는데, 이제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 수많은 제자들과 함께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로 들어오자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과 제자들을 정성스럽게 맞아드리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후에 마음속 깊이 귀의하여 평생동안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


빔비사라왕은 먼저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며, 주변이 고요하여 밤낮으로 명상하기에 적합한 성밖의 죽림에 정사를 지어 기증하였는데 이것이 불교교단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그러나 지금은 열대지방의 거친 대나무 숲에 절터였음을 알리는 넓은 대지 위에 대중들이 몸을 씻었다는 목욕지(沐浴池)와 주춧돌로 생각되는 반석들만 여기 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부처님의 제자 아슈와지트(Asvajit, 馬勝比丘)의 탁발하는 거룩한 모습과 그가 들려주는 연기법의 게송을 들고 감동하여 부처님에게 귀의한 지혜제일(智慧第一)의 사리불(舍利弗, Sariputra)과 신통제일(神通第一)의 목건련(目連, Maudgalayana)이 그들의 제자 250명과 함께 제자로 들어 왔으며, 두타행제일(頭陀行第一)의 가섭(迦葉, Maha-kassapa)도 이곳 죽림정사 시절에 부처님의 제자가 된 분이다.


그 다음으로 부처님은 고향 카필라성을 방문하여 아버지 정반왕을 비롯해서 이복동생 난다(難陀, Nanda)와 친아들 라후라(羅喉羅, Rahula), 그리고 사촌동생 아난다(阿難 Ananda)와 데와닷다(Devadata), 아나율(阿那律, Anurudha) 등 석가족 사람 5백 여 명을 한꺼번에 귀의시켰는데, 사촌동생 아난다(阿難)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까지 25년 동안이나 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시봉을 하였다.


그리고 코살라국을 방문하여 국왕 파세나디(波斯匿)를 교화시킨 다음 수도 사위성(舍衛城, Sravasti)의 수닷다(須達多, Sudatta) 장자로부터 기원정사(祇園精舍)를 기증 받는다. 대부호였던 장자 수닷다는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의복이나 먹을 음식 등 많은 것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라고 불리는 아주 의(義)로운 사람이었다.


수닷다 장자는 앞서 왕사성에 있는 처남의 집에 갔다가 부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과 같이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가 마침 시타바나(寒林)라고 하는 묘지에서 새벽산책을 나온 부처님을 만나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부처님께 귀의하여 한평생 신자가 될 것을 서약하면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 장소인 승원을 세워 기증할 것을 다짐하였다.


고향 사위성(舍衛城)으로 돌아온 그가 정사를 짓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그 나라의 태자인 제타(祇陀, Jeta)의 소유인 기원(祇園, Jetavana)이 가장 마음에 들어 여러 차례 태자를 찾아가서 그 땅을 양도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그때마다 완강하게 거절하면서 장난의 말로 '만약 당신이 동산 가득히 황금을 깔아놓는다면 몰라도 그러기 전에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수닷다 장자는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여러 대의 수레에 황금을 가득 실어와서 제타동산에 마구 뿌리기 시작하였다. 이 광경을 본 제타태자는 그의 깊은 신심에 감동하여 '이 동산 모두를 당신에게 그냥 드리겠소 그러나 입구의 공지만은 나에게 돌려주시오 나도 부처님의 교단에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고 하면서 기꺼이 그 동산을 기증하였다.


수닷다 장자는 제타태자로부터 기증 받은 광대한 토지 위에 불교 교단의 승원으로는 그 규모가 가장 큰 정사를 지어 교단에 기증하였는데, 제타태자의 숲이라는 뜻으로 기수(祇樹)와 급고독(給孤獨)이라는 장자의 이름을 합성하여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또는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하는데, 이곳은 빔비사라 왕이 기증한 죽림정사와 함께 교단의 양대 근거지로서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부처님은 여러 계통의 종교인들이나 국왕, 또는 평민이나 천민,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제자로 받아드렸는데, 여성으로는 그의 아내였던 야쇼다라와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파사파제, 그리고 수닷따 장자(長者) 장남의 아내인 수자타를 비롯해서 파세나디 왕의 부인 마스리카(末利) 등 비구니(比丘尼, Bhiksuni)가 된 여성들도 있고 재가신자인 여성들도 있었다.


부처님은 녹야원의 초전법륜을 시작으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45년 동안 갠지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중인도 일대를 도보로 순회하면서 교화와 설법을 계속하였으며, 제자들도 각각 따로 헤어져서 설법을 함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갠지스강 중류지방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초기경전에 나오는 지명으로 부처님의 교화활동 범위를 추정해 보면 북으로는 고향 카필라성에서 남으로는 성도의 땅 붓다가야(Buddha kaya)까지 남북의 거리 350km에 이르고 동쪽으로 앙가(Anga)국의 참파(Campa)에서 서쪽으로 코삼비(Kausambi)국까지 이르는 동서의 거리 550km의 먼길을 오직 맨발로 걸어서 왕래하면서 교화활동을 펴신 것이다.


부처님은 진정 길(道)과는 인연이 아주 깊으신 분이다. 룸비니 동산의 길(道) 가에 있는 무우수(無憂樹, 아쇼카)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시고 나이란자 강가의 언덕 길(道) 옆에 서 있던 보리수(菩提樹)나무 아래에서 도(道)를 이루었으며, 모든 중생들에게 올바른 삶의 길(道)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먼 길(道)을 걸어 다니면서 설법을 하시고 45년 간의 생애를 마치고 열반에 드신 것도 길(道)가의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