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남해안에는 장마전선의 북상과 태풍의 내습으로 심한 비바람과 함께 궂은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어 불안한 마음으로 비옷까지 준비하고 7월 14일 오전 11시 대구를 출발 오후 4시 반경 향일암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뜻 밖에도 드문드문 구름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이고 비켜 지나간 태풍의 영향으로 아직도 강하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은 초복 전날의 무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어루만져 준다.
관음전 아래 바닷가 요사에 여장을 풀고 더 넓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 보살님들의 티 없이 맑은 모습을 보면서 여기가 바로 신선들이 노니는 선경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관음전에서 저녁예불을 드리고 공양간에서의 주지스님의 법문, 처음부터 끝까지 보리를 강조하셨는데, 모든 중생들 하나 같이 희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바로 보리일진데, 무슨 다른 얘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스님 부디 무상보리 증득하시어 성불하시옵소서.
수년, 아니 10년도 넘게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잠깐 동안 세 차례나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나타난 일곱 빛깔 무지개, 철야정진을 마칠 때까지 하늘은 어제의 구름이 온통 그대로 남아 있어 기대했던 향일암 일출을 볼 수 있을까 마음조리면서 성지순례를 온 것인지 일출관광을 온 것인지 분간도 못하고 동쪽 하늘만 주시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환호와 함께 갑자기 동쪽하늘이 열리면서 붉고 둥근 해가 수평선 위로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황금물결을 타고 솟아올랐던 해가 다시 구름사이로 들어갈 때까지의 시간은 불과 1분 남짓, 원효스님의 글이라는 관음전 주련, 벽파심처현신통(碧波深處現神通)의 글귀대로 '남해 푸른 바다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투신 관세음보살의 신통력의 가피가 아닐까'
온 가슴 가득 환희심을 간직하고 찾아간 구례 화엄사의 사시공양예불, 다시 남원 실상사를 참배하여 한 선지식스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정유재란 때 왜구들에 의해서 절이 전소되는 큰 피해를 입은 이후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해야 실상사가 흥한다'는 설화로 인해서 가람을 일본으로 향하게 배치하고 범종에 일본열도를 그려놓고 아침저녁 그 곳을 두들겨 팼다던 그 범종은 이미 법당 안으로 물러나 있었고,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그들이 잘못되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스님의 말씀.
과다한 불사로 점차 옛 모습을 잃어 가는 전통사찰의 변모된 모습을 보고 가졌던 불편한 마음이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도 가장 먼저 산문을 열었다는 유서 깊은 실상사의 피폐하다시피 한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감회에 젖어 있었는데,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탑 둘레에 쳐 놓았던 철조망을 제거하고 법당도 개방하여 누구든지 탑과 부처님의 몸을 가까이서 만져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스님의 말씀.
절 입구와 곳곳에 심어놓은 연꽃을 비롯한 여러 가지 화초들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스님의 마음이 그대로 스며들어서 일까.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산문을 나설 수 있었다. 정확하게 1년만의 법회참석이다. 향일암의 철야정진, 오랜만에 본 무지개와 아침 일출의 장관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보고 싶었던 많은 얼굴들이 보이지 않아 한편 섭섭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몸과 마음은 홀가분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입니다.
아침 일출의 장관
화엄사 일주문
주변 철조망을 모두 없앤 실상사의 불탑과 동종
'이름난 사찰, 불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눈속에 묻힌 마이산.. 탑사 (0) | 2008.03.04 |
---|---|
[스크랩] 바다에 핀 꽃, 연화도(蓮花島) (0) | 2008.01.23 |
[스크랩] 향일암-1 (0) | 2007.07.21 |
[스크랩] 향일암-3 (0) | 2007.07.21 |
[스크랩] 목각탱화 (0) | 2006.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