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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상에 딱 300권 뿐인 목판 인쇄

문선광 2006. 3. 22. 04:34
세상에 딱 300권뿐인 목판 인쇄 '지장보살본원경'

정성과 땀방울의 결정체, 목판에 새긴 불심
임윤수(zzzohmy) 기자
▲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데 믿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 임윤수
분명 뭔가를 보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눈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을 비비며 재삼 확인하려하지만 믿기지 않는 그것은 또렷하게 눈앞에 존재합니다. 그럴 때마다 헤벌쭉 입을 벌린 채 멀뚱한 눈을 껌벅거리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으로 그 믿기지 않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런 일이 어디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있겠습니까.

사리판단이 흐려질 만큼 사랑에 눈먼 남녀사이라면 눈에 낀 콩깍지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에서,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보는 사람들마다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하거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들이 꽤나 많습니다. 보고 또 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할 만큼 정교하거나 기묘해 인간의 손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러한 사실들이 현물이 되어 눈앞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가늠할 수없는 장인정신에 탄복을 하며 인간들의 창조력과 손끝이 구사할 수 있는 그 기교와 정교함의 끝이 어디일까를 가늠하느라 두 눈만 껌벅이며 번번이 눈뜬장님이 됩니다.

▲ 어려운 한자뿐 아니라 복잡한 그림까지 바로가 아닌 뒤집혀진 상태로 아주 섬세하게 그려진 것을 보고 있노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두 눈을 껌벅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 임윤수

▲ 판박이를 하듯 한지에 찍어내니 뒤집혀 있던 목판의 글씨와 그림이 이렇듯 반듯한 글씨와 그림이 되었습니다.
ⓒ 임윤수
성인이라면 누구나 도장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요즘이야 컴퓨터와 조합된 인장 조각기가 보편화돼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지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도장을 파려면 특별한 기술과 손재주가 필요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 손재주 좋은 친구들이 이따금 지우개나 나무토막을 이용해 도장을 파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 있어 도장을 판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기술이었습니다. 나무에 이름 석 자를 거꾸로 새기는 도장파기도 이렇듯 쉬운 일이 아닌데 옛날에는 책을 만들기 위해 목판에 빼곡하게 뒤집어진 글을 양각하였으니 그 정성과 섬세한 능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팔만대장경은 국보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글자 하나하나를 새긴 장인들의 정성이 역사적 가치에 못지않다는 생각입니다. 부드럽게 써지는 연필을 가지고도 복잡한 한문을 반듯하게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딱딱한 목판에, 그것도 글자가 뒤집어진 상태로 양각을 해야 하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 연필로 쓰기에도 복잡한 한자, 더구나 뒤집혀진 글자꼴이 반듯반듯하게 서각되어 있습니다.
ⓒ 임윤수
연필로 종이에 쓰는 글씨라면 한자쯤 잘못 쓰거나 틀리면 슬쩍 지우고 다시 쓰면 되겠지만 나무를 깎아 양각으로 돋게 하는 목판의 글씨들은 정말 한 치의 오차나 실수도 인정되지 않았을 듯합니다. 자칫 착각으로 거꾸로 파야하는 삐침이라도 실수하면 모든 게 틀려지니 말입니다.

웬만한 규모의 절에는 지장전이나 명부전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전각들이 있습니다.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니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지만 저승세계를 상징하는 어둠의 세계, 염라국의 십왕상이 모셔진 곳이기에 명부전(冥府殿)이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화려한 원색의 연등이 달려있는 여느 법당의 천장과는 달리 지장전의 천장에는 소복처럼 하얀색의 영가등이 달려 있습니다. 육환장을 들고 삭발을 한 지장보살상이 가운데 모셔져 있고 좌우로 염라국의 십왕상과 판관이나 사자상 등이 도열해 있는 경우도 보일 겁니다.

지장보살님이란 어떤 분?

지장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이 없어질 때까지 성불을 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운 불보살입니다. 사바세계의 삶을 살면서 쌓은 업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진 부지기수의 중생들이 받는 그 고통과 애처로움을 차마 어쩌지 못해, 그들 모두를 구제하겠다고 지옥 문턱에서 구원과 자비의 보살행을 실천하고 계신 보살님이라고 합니다.

▲ 목판에 먹물을 바르고 조심조심 찍어내니 이렇듯 한 장의 경문이 되었습니다.
ⓒ 임윤수
“지장보살본원경”에 따르면 지장보살의 전신은 브라만 사제의 아름다운 딸이었다고 합니다. 사제의 딸은 아름답고 마음씨도 고왔지만 그녀의 모친은 그렇지 않았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질투하고 시기할 뿐 아니라 생활조차 방탕하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그런 일생을 전전하다 그녀는 마침내 처참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마음씨 고운 딸은, 생전에 지은 죄가 태산 같은 어머니가 저승 지옥에 떨어져 받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겪을 고통을 덜어주고, 그 고통의 세계로부터 어머니가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자비 행을 실천했습니다. 굶주리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다 보니 이제 그녀는 거지꼴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에게 베푸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결국 알몸이 되었습니다. 알몸이 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흙을 발라 알몸을 가려야 했습니다.

▲ 아주 입체적입니다. 자칫 삐침하나라도 빗나가면 들였던 공이 무너지는 그런 순간이 될듯합니다.
ⓒ 임윤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지극한 자비행이 알려지면서 각화정자재왕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로부터 그녀는 '지장보살'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장이 된 그녀는 여래의 인도로 지옥세계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온갖 지옥에는 생전 죄지은 이들이 우글대고 있었습니다. 지옥의 세계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런 지옥에서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는 중생들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죄과로 인해 고통 받는 육도 중생들을 모두 해탈케 한 연후에야 성불하겠노라"는 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바야흐로 “지옥 중생을 다 구제하리라는 지장보살의 대원”이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그를 가리켜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중생에 대한 철저한 연민과 대자비행은 지장보살의 외형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불상으로 등장하는 불보살들은 화려한 의상에,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휘황찬란한 장식물로 칠보단장을 하였지만, 지장보살만은 그냥 삭발한 상태거나 수건을 쓴 정도의 비구니 모습입니다.

구원자의 모습이 화려하면 그 화려함에서 위엄과 안도감은 생길지 모르지만 범접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장보살상은 중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머리를 삭발하고 남루한 가사를 입은 모습으로 계신다고 합니다. 이렇듯 세세한 부분까지 헤아리는 지장보살님이기에 오늘도 화려하지 않은 비구니 모습으로, 석장으로 지옥문을 두드리며 지옥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기도하고 계실 분입니다.

지장보살은 현세불인 석가부처님 입멸 후부터 미래불인 미륵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출현하는 56억여 년 동안 오타악세 중생을 구원하도록 석가모니불로부터 위임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그 때 지장은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 중생에 대해서는 염려 마옵소서"하며 다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장보살은 부처님 부재 시 말법세계의 중생을 구원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모든 장소에 현신하여 육도 윤회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고 계신 불보살입니다.


딱 300권만을 찍어낸 목판 인쇄, 지장보살본원경

이와 같이 지장보살에 대한 전부를 담고 있는 ‘지장보살본원경’이 목판에 서각되어 딱 300부만 찍어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목판 지장경이 출판되기까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예리한 칼날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한 자 한 자를 새겨나갔을 장인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 세상에 딱 300권만 존재하는 경문(책)임을 보여줍니다. 원판이라 할 목판에 인출한 그 숫자 300권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 임윤수
조각을 하기에 적당한 수종을 골라 천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뒤틀리지 않을 만큼 잘 건조시킨, 두툼하고 널찍한 목판을 일정하게 자르고 규격에 맞게 손질을 하였을 겁니다. 목판을 종이처럼 흠집 없이 다듬고 그 위에 한문으로 된 경문을 뒤집어 넣듯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넣기 시작하였을 겁니다.

아무리 숙련된 손놀림이라고 하지만 그 예리한 칼끝에 손끝을 찔린 적도 있을 겁니다. 그 숙련된 손놀림을 얻기까지 몇 번이나 칼끝에 손을 베이거나 찔렸을까는 어림조차 되지 않습니다. 조각칼을 움켜쥔 손가락에 맺힌 굳은살도 몇 번씩 정도는 뜯어내고 새로 잡히는 과정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세상의 만상에 눈감고 만상의 소리에 귀 닫은 채 칼끝에만 집중해 경문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니 오감과 정성의 형체가 뒤집어진 글자로 하나하나 돋아납니다. 가끔은 흐릿해지기조차 하는 시선을 집중시키고, 고랑이라도 이룰 듯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줄기 훔쳐가며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돋아냅니다.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철에도 돋아나는 새싹처럼 경문을 돋아 올렸고, 녹음 무성한 한여름에도 주르르 흐르는 땀방울을 쌓아 경문으로 돋우었을 겁니다. 티끌처럼 새겨온 경문들이 반 년쯤의 세월동안 쌓이니 몇 장의 목판정도는 완성되었을 겁니다.

산천계곡이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에도, 삼라만상이 움직임을 멈추는 한겨울에도 장인의 칼끝은 멈추지 않으니 어느덧 30장, 양면으로 경문이 빼곡하게 서각된 경판이 완성되었습니다.

▲ 깎고, 다듬고, 문지르고 찍어낸 한 장 한 장의 경문을 손으로 엮어내니 이렇듯 한권의 지장보살본원경이란 경문이 되었습니다.
ⓒ 임윤수
이렇게 완성된 목판에 탁본을 뜨듯 먹물을 바르고, 종이를 올려놓고 한장 한장 뱃살 문지르듯 문질러 찍어냈습니다. 먹물을 많이 바르면 글씨가 번질 테고, 너무 적게 바르면 글씨가 희미해지니 먹물을 바르는 데도 정도와 정성이 요구됩니다.

먹물을 바른 목판에 올린 한지를 성의 없이 문지르다가는 자칫 먹물 먹은 한지가 찢어질 수 있으니 무아지경의 심신으로 바람에 구름 가듯, 바람결에 장삼자락 너울대듯 조심조심하며 한장 한장을 박아내야만 했을 겁니다.

이렇게 정성의 들숨을 들이마시고 인고의 날숨을 내쉬며 찍어내고 묶어내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낱장의 경문들을 차례대로 합본하고 엮어주니 두툼한 경문 한 권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문은 더도 덜도 아닌 딱 300권만 제작되어 보시자들의 서원문이 더해져 지장전에 봉안되었습니다.

두들기기만 하면 글자들이 두르르 쏟아지는 컴퓨터인쇄기도 있고, 이미 만들어진 활자들도 많지만 굳이 살점을 오려내듯 한자 한자 목판 서각을 한 것은 심신이야말로 정성과 땀방울로만 그려낼 수밖에 없는 감탄과 탄복의 결정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경판 하나, 글자 한자를 이리보고 저리 보며 그 정교함과 깔끔함에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두 눈만을 멀뚱거리며 감탄하고 찬탄할 뿐입니다. 입 또한 헤벌쭉 벌린 그런 상태가 분명합니다.

돈벌이의 안목으로 본다면 허송세월에 우매하기 그지없는 목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경판에 스며든 정성과 땀방울이 진가를 더해 가면 그 자체가 보물이며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보는 이가 두 눈만을 멀뚱거리게 믿기지 않는 또 하나의 심오한 대상물이 될 것입니다.

지장보살본원경은 ?
총 13품으로 이루어진 경문

▲ 경문의 ‘제 13품 하늘과 사람을 부촉하다’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지장보살원본경은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신 내용으로 지장보살이 백천방편으로 6도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죄를 짓고 온갖 지옥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평등하게 제도하여 해탈케 하려는 지장보살의 큰 서원을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경문은 제 1품 도리천궁에서 신통을 나투다. 제 2품 분신들이 모이다. 제 3품 중생의 업연을 살피다. 제 4품 염부제 중생이 업보 받음. 제 5품 지옥의 이름. 제 6품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을 찬탄하심. 제 7품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이익 되다. 제 8품 염라왕의 무리들을 찬탄하심. 제 9품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제 10품 보시한 공덕을 비교하다. 제 11품 지신(地神)이 법을 옹호하다. 제 12품 보고 들어 얻는 이익. 제 13품 사람과 하늘을 부촉하다. 등 총 13품(Chapter)으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습니다.

경문의 제 13품 사람과 하늘을 부촉하다의 일부 내용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자세히 들으라. 내가 마땅히 그대를 위해 분별하여 말하리라. 만약 미래세에 어떤 선남자 선녀들이 지장보살의 형상을 보고, 또 이 경을 듣고 독송도 하며, 향, 꽃, 음식, 의복, 보물로써 보시 공양하여, 찬탄하고 첨례한다면 스물여덟 가지 이익을 얻게 되나니,

첫째는 하늘과 용이 지켜 줄 것이요, 둘째는 좋은 과보가 날로 더함이요, 셋째는 성현의 높은 인을 모음이요, 넷째는 보리에서 물러서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의식이 풍족함이요, 여섯째는 질병이 오지 못함이요, 일곱째는 수재 화재를 여임이요, 여덟째는 도적의 액이 없음이요, 아홉째는 사람이 보고서 흠모하고 공경함이요, 열째는 귀신이 도와줌이요,

열한째는 여자는 남자의 몸으로 바꿀 수 있음이요, 열둘째는 여자라면 임금이나 대신의 딸이 됨이요, 열셋째는 모양이 단정함이요, 열넷째는 천상에 많이 태어남이요, 열다섯째는 혹은 제왕이 됨이요, 열여섯째는 숙명지를 통함이요, 열일곱째는 구하는 것은 다 뜻대로 됨이요, 열여덟째는 권속들이 화목함이요, 열아홉째는 모든 횡액이 소멸됨이요, 스물째는 업도가 영원히 없어짐이요.

스물한째는 가는 곳마다 통달함이요, 스물둘째는 밤에 꿈이 편안함이요, 스물셋째는 선망 권속이 괴로움을 벗어남이요, 스물넷째는 지어놓은 복을 타고 남이요, 스물다섯째는 모든 성현이 찬탄함이요, 스물여섯째는 총명하고 근기가 날카로움이요, 스물일곱째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넉넉함이요, 스물여덟째는 필경에 성불하는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 경문 내용 중 발췌
출처 : 해인사수련동문회
글쓴이 : 안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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